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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건축의 언저리에서(짧은글 모음)
* 2009년 11월에 발간된 '궁궐의 논물, 백년의 침묵'에 실린 원고임.

□ 궁궐의 근대 건축, 100년의 역사

조선왕조에 의해 오백여년 동안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궁궐 체계를 해체하고 파괴하면서, 그 자리에 근대 건축물이 들어선 지난 백여 년의 기간은 우리의 전통 사회와 국가 체계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정치 권력, 경제 구조, 문화 환경 등이 모두 새로운 체계로 대체되는 기간이었다. 그러한 광범위한 변화와 대체의 과정을 상징적이며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물리적 결과물이 곧 궁궐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80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의 기간에 궁궐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 중에서 그 실체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 건축물은 약 20여동 정도이다. 그 중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건축물도 절반에 달한다. 궁궐에 세워진 근대 건축물, 그 100여년의 역사는 건축을 둘러싸고 있는 광범위한 역학관계와 맥락 속에서 건축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며, 작동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궁궐에 들어선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세워진 것은 경복궁의 관문각과 경운궁의 구성헌, 정관헌, 중명전, 돈덕전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조선왕실 또는 대한제국 황실에서 지은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이 건축물들이 진정으로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의 의지와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궁궐의 일부로서 왕실과 황실에서 주로 사용했던 건축물임에는 틀림없다. 왕실의 서책을 보관하는 장소였거나 휴식과 접견의 장소, 다양한 공적, 사적 행사의 장소였다. 그리고 오백년 역사를 뒤로 하고 사라져 가는 한 왕조의 마지막을 증언하는 장소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건축물 중 상당수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단지 한, 두 장의 사진과 몇 줄의 기록만을 남겼을 뿐이다. 그것은 전통세계의 해체와 새로운 세계로의 교체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10년을 전후한 시기에 궁궐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들은 그 지어진 장소와 기능 등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함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대한제국기에 이미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던 경운궁을 벗어나 창경궁을 비롯하여 소규모 궁이었던 경모궁, 운현궁, 달성궁 등이 대상이 되었다. 지어진 건축물도 석조전과 같은 궁궐 건축과 함께 온실, 병원, 주택, 은행, 박물관 등 변화된 근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건축물의 양식적 특성도 다양했다. 서양 고전주의 건축 양식에 충실하고자했던 건축물에서부터 고전주의의 의장 요소를 과장하여 표현한 건축물, 공학적이며 실용적인 접근이 드러나는 건축물, 그리고 일본의 전통양식을 적용한 건축물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건축물에서는 공통적으로 새로 등장한 정치적, 사회적 체계를 서둘러 정착시키고 안정화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나타나고 있었다.

1920년대 중반에는 이렇게 새로 형성되고 공고해진 변화의 정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경복궁의 근정전 앞에 들어선 조선총독부 청사는 이제 모든 권력과 사회 체계가 철저하게 변화되었고 공고해졌음을 눈앞에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더 이상의 변화는 없고,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듯 웅장하면서 섬세한 돌 건축이 갖는 미학적 특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치 권력이 종종 고전주의 건축이 갖는 형태적 완결성과 위계성을 충분히 이용해 왔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조선총독부 청사는 그 자체의 양식적 특성 뿐만 아니라 근정전에 대비되는 위치 선정과 물리적 크기라는 매우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의도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1930년대 궁궐 내에 지어진 주요 근대 건축물은 미술관이었다. 궁궐은 정치 권력의 문화적 면모를 과시하기에 적절한 일종의 배경이 되었다. 1910년대에 궁궐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처럼 새로운 사회체계를 드러내기 위한 서두름도 1920년대와 같은 단순하고 직접적인 힘의 과시도 아니었다. 궁궐은 필요에 따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무대 장치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 1970년대와 90년대까지 궁궐에 지어진 주요 건축물은 박물관이라는 또 다른 문화시설 이었다. 공교롭게도 경복궁에는 2번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이 지어졌고, 경희궁에는 지자체의 박물관이 지어졌다. 정치 권력의 주체는 바뀌었지만 새로 지어진 건축물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궁궐에 대한 시각은 1930년대와 해방 이후에서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궁궐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혹시 이전의 시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각으로 궁궐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2010/05/13 09:38 2010/05/13 0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