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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건축의 언저리에서(짧은글 모음)
* 2009년 11월에 발간된 '궁궐의 논물, 백년의 침묵'에 실린 원고임.

□ 창경궁(慶運宮)

  창경궁은 근대기를 거치면서 가장 훼손이 심했던 궁궐이었다. 통감부가 설치된 이후 1907년부터 궁궐에 박물관이나 동식물원 등의 시설을 설치하여 공원으로 조성하려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궁궐 중에서 가장 먼저 이러한 시설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 창경궁이었다. 순종이 즉위하면서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한 후 창경궁에는 본격적으로 근대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남북으로 긴 창경궁 영역의 북쪽에는 식물원이 만들어지도록 계획되었고 남쪽에는 동물원을 중심영역에는 박물관을 계획하였다. 남쪽 영역인 선인문(宣仁門) 안에 동물원이 마련되었고, 옛 권농장(勸農場)이던 내농포(內農圃) 일대에 일본식으로 못을 파 물고기를 기르고 연(蓮)을 심어 춘당지(春塘池)를 크게 왜곡하는 등 궁궐 전체를 공원화시켰던 것이다.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을 형성하는 창경궁은 국왕이 창덕궁에 머무르는 동안 산책이나 접견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다. 때문에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한 이후 창경궁에 대한 수리의 필요성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필요성을 악용하여 일제는 황제를 위한 위락시설을 설치한다는 명분으로 창경궁에 동식물을 기르는 사육시설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에는 이러한 행위가 더욱 노골화되어 명정전(明政殿) 남북 행각 외에 궐내의 행각, 월랑, 궁장과 내전의 많은 부속 건물들이 헐리고 사라졌다. 그리고 장서각(藏書閣)과 수정(水亭) 등의 일본식 건물들이 들어섰으며 시민당 옛터에는 표본실이 들어섰고 1911년부터는 궁궐의 이름을 창경원(昌慶苑)으로 바꾸어 버렸다. 1924년부터는 밤 벚꽃 구경을 위해 야간에도 공개되었다. 이로써 창경궁은 일제강점기 동안 최대의 행락지로 변해버렸고, 해방이후에도 일반시민들의 행락지로서 사용되었다. 1977년에는 남서울대공원을 건립키로 하고 창경원의 동물을 이전할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부터 동식물원의 공개 관람이 금지되었고, 같은 해 12월 비로소 창경궁으로 환원되었다.

  ■ 대온실

창경궁에 식물원이 조성되면서 식물을 재배하기 위한 대온실이 건립되어 1909년 11월에 완공되었다. 명정전 중심의 창경궁 중심 영역에서 북쪽으로 대춘당지와 소춘당지를 지나 남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쪽으로는 인접하여 창덕궁 후원의 애련정(愛蓮亭), 연경당(演慶堂), 춘당대(春塘臺) 등이 있다. 최초 건립 당시에는 대온실의 뒤쪽으로 2동의 돔형 온실이 더 있었으나 현재는 철거되고 없다. 1983년 12월 창경궁 중수공사를 계기로 한국 자생란을 중심으로 자생식물 등 총 766점을 전시하고 있다. 2004년 2월 6일 등록문화재 제83호로 등록하여 관리되고 있다.

대온실의 설계는 일본인 후쿠바 하야토(福羽逸人)가 하였고, 시공은 프랑스 회사에서 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림 21] 대온실이 실제 지어지기 까지는 일본인의 설계보다는 시공을 담당했던 프랑스 회사에 의해 주도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근대 온실 건축은 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에서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의 진기한 식물들을 자국에서 기르고 감상하기 위하여 근대적 의미의 시설물로서 온실 건축이 발달해 왔고, 농학과 식물학이 발달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대온실 역시 이러한 근대 온실 건축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식물학과 원예학 등이 발달할 수 있었던 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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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은 목구조와 주철 구조가 동시에 사용된 독특한 구조 방식의 건물로 정면이 33m, 측면이 14.65m, 높이가 10.5m의 규모이다. 최대한 많은 태양광을 받기 위하여 부재의 두께가 최소화되어 가는 창살과 구조체들이 만들어내는 섬세한 세부 표현이 특징적인 건물이다.[그림 22] 목재 창호는 부분적으로 이슬람 건축의 요소인 뾰족한 오지(Ogee) 아치가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지붕 꼭대기의 용마루에는 배꽃 모양의 문양이 연속되어 장식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동서 방향으로 긴 십자가 형태의 평면으로 정면 중앙에 박공 지붕 형태의 현관을 돌출시켰다. 내부 공간은 중앙 부분이 높은 형태로 되어 있으며 고전적인 형식을 띤 주철제 기둥으로 지지되고 있다. 기둥 위쪽으로 트러스가 얹어져 지붕 구조체를 형성하고 있다. 기둥 사이에는 난간을 만들어 통로를 구분하고 있고[그림 23] 창문의 개폐를 위한 작은 기계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다. 대온실 앞의 화단은 좌우대칭으로 회양목으로 문양을 표현하여 대온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근대기에 도입된 서양식 조경의 예이다. 2004년 화단을 포함한 대온실 주변에 대한 조경정비 공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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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서각(藏書閣)

창경궁의 장서각 건물은 명정전의 북서쪽 통명전(通明殿)과 양화당(養和堂)의 뒤쪽 언덕에 지어졌던 건물로 원래 이 자리는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慈慶殿)이 있던 위치이다. 자경전은 1873년 12월 10일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장서각은 1911년 9월 박물관 용도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초기에는 창경궁 박물관으로 사용되었고 이왕가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1938년 덕수궁에 이왕가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유물을 이관하고 황실 도서를 관리하던 장서각으로 사용되다가 1992년 12월 철거되었다.

장서각은 벽돌조 2층 건물로 전체적으로 3동의 건축물을 연결시켜 놓은 것과 같은 형태로 분절된 건물이다.[그림 24] 중앙부에 있는 건물이 가장 크고 그 좌우에 있는 건물은 동일한 형태로 그 규모가 조금 작다. 중앙부분의 지붕은 일본 전통 성곽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4면으로 팔작의 박공면을 형성한 형태이다. 지붕의 중심에는 새의 형상을 조각하여 올려놓았다. 좌우측 부분은 모임지붕의 형태를 띄고 있다. 양화당과 영춘헌 사이의 경사진 언덕에 설치된 높은 계단으로 연결되는 중앙부분의 주출입구는 일본식 맞배지붕의 현관이 돌출되어 있다. 외벽은 벽돌을 쌓았고 수직으로 긴 창을 배열하였다.[그림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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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전의 좌측 문정전(文政殿)의 뒤쪽에도 서양식 건축물이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장서각과 건립시기 및 기능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창경궁에는 1911년과 1915년에 각각박물관과 장서각이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어떤 건축물을 지칭하는지 정확하지 않다.[그림 26] 일제강점기 사진 자료에서 위의 건축물이 박물관으로 지칭되고 있고, 후에 장서각으로 불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건물이 원래 장서각이란 이름으로 지어졌던 건물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 건물의 정확한 규모 등을 알 수는 없으나 사진으로 보자면 2층 정도 규모의 벽돌조 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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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09:50 2010/04/22 0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