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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건축의 언저리에서(짧은글 모음)
* 2009년 11월에 발간된 '궁궐의 논물, 백년의 침묵'에 실린 원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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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 언덕 위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오른 명동성당[그림 1]의 첨탑과 정동 언덕 위에 세워진 러시아 공사관[그림 2]의 위용을 보여주는 옛 사진들에서 우리는 근대 초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세워진 서양식 건축물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지 조금은 상상해 볼 수 있게 된다. 낮게 깔린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전통적 도시 경관에 극적으로 대비되면서 이 낯선 건축물들이 연출하는 새로운 경관은 당시 우리 민족에게 서양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충격적인 광경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외세의 불가항력적인 힘에 스러져가던 국가의 위태로운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그 충격은 더욱 컷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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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은 그 건축물이 갖고 있는 본래의 용도와 기능에 따른 가치 뿐만 아니라 그 건축물이 지어지고 사용되는 동안의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 부가적인 가치를 갖게 된다. 특히 궁궐에 들어선 근대 건축물은 개별적인 건축물 자체가 갖는 건축적 가치 뿐만 아니라 그 건축물이 한국의 전통사회와 전통건축을 대표하는 궁궐 건축과 대비되어 지어졌다는 그 상대적 관계에서 더 많은 부가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중화전에 대비되는 석조전이나 근정전에 대비되는 조선총독부의 모습은 명동성당이나 러시아 공사관 만큼의 커다란 충격으로 우리 민족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석조전이나 조선총독부 건물과 같은 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궁궐에 들어섰던 근대 건축물들은 그 쓰임새와 양식은 물론 그 성격과 의미에서도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경복궁을 비롯하여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 경희궁 등의 대표적 궁궐들은 근대의 격변기를 거치는 동안 그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변형되고 훼손되어 왔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근대 건축물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조선왕조의 정궁이었던 경복궁에는 일제 식민지 지배 권력의 상징이었던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섰고 각종 박람회와 함께 조선총독부의 통치를 기념하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지어졌다. 창경궁에는 동물원과 식물원이 만들어지면서 각종 동물의 우리와 식물 온실, 장서각 등의 건물이 들어섰다. 물론 일제에 의해 지어진 경복궁과 창경궁의 근대 건축물과는 다른 성격의 근대 건축물도 있었다.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의 정궁으로 조성한 경운궁에 세워졌던 중명전과 정관헌, 돈덕전, 석조전 같은 건축물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궁궐에 근대 건축물을 채워 넣는 일이 일제강점기만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일제가 세운 근대 건축물을 철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건축물들을 채워갔던 것이다. 경복궁에는 70년대에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이 들어섰고, 10여년 전에는 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이 신축되었다. 경희궁에는 서울역사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새로운 건축물들이 신축되던 당시에는 그 상황마다 나름대로의 타당한 논리가 있었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신축공사가 진행되었다. 물론 일제강점기에도 그 당시의 나름대로의 논리는 있었다. 앞으로 우리 궁궐의 모습은 또 다시 어떻게 변모하게 될까? 1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궁궐에 들어선 근대 건축물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2010/04/08 10:14 2010/04/08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