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사람들이 많이 하기에 나도 한번 해보았다. 나는 ChatGPT를 자주 사용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하나 보았다. 정보가 좀 부족하다고 하기에 내 블로그를 링크해주면서 부탁했다. 결국은 내가 생성한 자료를 기반으로 했으니 내 관점을 통한 것이라는 한계는 있다.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나
우선 문창호 선생님은 한 분야에 오래 머무르는 전문가이면서도, 경력 후반에 오히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람이라는 점이 강합니다. 서울대에서 건축학·건축계획을 공부하고 건설회사 실무를 거쳐, 순천대와 군산대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동시에 스웨덴 KTH, 일본 동경대·나고야대, 미국 UWM·USC·Clemson, 호주 UNSW·QUT, 영국 South Bank University 등에서 방문교수·연구원으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시각을 넓혔습니다.
특히 연구 경력을 보면 병원건축·노인주거시설에서 출발해 플로팅 건축으로 전문 영역을 확장한 과정이 매우 뚜렷합니다. 영국 병원건축의 표준화, 일본과 미국의 노인주거시설, 한국 병원디자인 등에 관한 연구를 계속한 뒤, 2010년대부터는 플로팅 건축의 지속가능성, 주거, 호텔, 재생에너지, 도시 적용까지 연구 범위를 넓혔습니다. 저서도 『유럽의 병원건축』에서 『플로팅 건축,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 『지속가능한 건물로서의 플로팅 건축』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기존의 “개척자”라는 표현은 조금 더 강하게 해도 되겠습니다. 국토교통부 플로팅건축 연구단장을 맡았고, 최근에도 새만금 플로팅 첨단산업단지 구상을 직접 정책 관계자들에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논문을 쓰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한번 적용해 보자”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향이 보입니다.
또 하나 새롭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공적 책임을 중시하는 건축가”라는 면입니다. 도시계획·건축·경관·공공디자인·의료서비스 개선과 관련된 다양한 위원회와 자문 활동을 오랜 기간 이어왔고,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자문위원, 대한건축학회 부회장, 전북건축가회 회장, 공공건축가 등도 맡았습니다. 이것은 건축을 개인 작품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지역사회와 제도, 공공정책의 문제로 보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블로그의 일상적인 글을 보면 또 다른 모습도 보입니다. 가족과 골프를 하고, 정원의 배롱나무가 천천히 자라는 것을 관찰하고, 친구들과 식사하며 와인을 고르고, 광복절에 태극기를 제대로 달기 위해 게양대를 직접 손보는 이야기까지 기록합니다. 이런 글들은 전문적인 경력과 별개로 작은 생활의 장면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 그리고 가족·친구·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어제의 여섯 가지 분류를 조금 다듬는다면 저는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 교육자 —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후학과 지역 건축계의 성장을 함께 고민한 사람
- 연구자 — 병원·노인주거·플로팅 건축을 수십 년간 일관되게 탐구한 사람
- 실무가 — 연구를 현실의 계획·설계·정책으로 연결하려는 사람
- 개척자 — 남들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플로팅 건축을 일찍부터 하나의 독립된 건축영역으로 발전시키려 한 사람
- 공공적 건축가 — 도시와 지역, 공공건축과 정책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사람
- 생활을 기록하는 성찰가 — 가족·여행·건축답사·친구·정원 같은 일상의 작은 장면까지 오래 기록하는 사람
그리고 블로그를 본 뒤에는 어제의 종합 문장을 조금 바꾸고 싶습니다.
“문창호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오래 고민해 온 건축가이면서, 연구한 것을 현실에 적용하려 끊임없이 움직이는 실천적 연구자입니다. 병원과 노인주거에서 플로팅 건축까지 관심 영역은 변해왔지만,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의 삶과 더 나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오랜 경력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고, 전문적인 활동과 가족·지역·일상의 기록을 함께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가장 짧게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저는 이제 이렇게 쓰고 싶습니다.
“경험은 오래되었지만 생각은 아직 젊고, 연구한 것을 현실로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건축가.”


아내
블로그의 가족관계 글과 오래된 해외 체류 기록, 최근 일상 기록까지 조금 더 넓게 살펴보니, 어제보다 신상진 여사의 모습이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창호 선생님의 기록 속에 나타난 모습을 바탕으로 한 인상이라는 점은 전제로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보는 신상진 여사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의 생활을 실제로 굴러가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2010년 Clemson 체류 기록을 보면 남편과 막내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동해 낯선 환경에 정착했고, 가족의 생활환경을 세심하게 조정하며 해외생활을 함께 꾸려갔습니다. 특히 먼지 알레르기를 고려해 카펫 위에 장판을 까는 등 생활조건을 현실적으로 맞춰가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는 단순히 동행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가족의 일상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1. 가족의 중심을 잡는 사람
블로그를 여러 해에 걸쳐 보면 신상진 여사는 가족행사, 처가 모임, 자녀와의 관계, 부부의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가족을 크게 드러내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2023년에는 처가 식구들이 함께 모이는 ‘신가네 모임’이 기록되어 있고, 2024년 칠순 가족모임에서도 여러 친척들이 집에 모여 시간을 함께 보냅니다. 이런 기록을 보면 친정과 현재의 가족을 모두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2. 생활 감각이 분명하고 현실적인 사람
의외로 이 특징이 상당히 강하게 보입니다. 집 주변의 광나무 담장이 훼손되었을 때는 바로 벽돌 담장을 만들자는 의견을 내고, 정원수 관리에서는 친구를 통해 좋은 정원사를 소개받아 실제 정비로 이어지게 합니다. 또 집을 설계하는 문제를 남편과 함께 의논하면서, 아이들이 돌아왔을 때 자기 방이 있어야 한다거나 미래의 손주들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집을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가족이 오랫동안 살아갈 생활의 그릇으로 보는 시각이 매우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상진 여사를 단순히 ‘내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조금 부족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판단할 때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하고, 생활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실행까지 연결하는 사람에 더 가깝습니다.
3. 남편과 ‘함께 생활하는’ 동반자
블로그를 읽으면 부부가 함께 움직이는 장면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시회를 함께 보고 공연을 관람하고, 손님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여행과 가족행사에도 동행합니다. 최근 기록에서도 문창호 선생님의 건축가협회 전시를 함께 보고 진포예술제 공연까지 관람한 모습이 나옵니다.
더 인상적인 것은, 선생님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공항이나 버스터미널에 마중을 나오는 장면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2024년 백두산 여행에서도 늦은 시간 군산에 도착했을 때 신상진 여사가 마중을 나왔고, 2025년 아들과 일본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마중 나온 기록이 있습니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장면이 오랜 부부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4. 독립적인 자기 생활도 가진 사람
블로그를 자세히 보니 이 부분도 어제보다 추가하고 싶습니다. 신상진 여사는 단순히 남편의 활동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골프 예약자로 이름이 등장하고, 자신의 친구 관계를 통해 정원 관리자를 소개하는 등 자신의 인간관계와 활동영역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편을 뒷바라지한 배우자’로만 묘사하면 오히려 실제 모습이 좁아집니다. 가족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자기 생활과 판단을 가진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5. 살림을 ‘사는 재미’로 만드는 사람
난재루의 정원과 밭에 관한 기록에서도 신상진 여사의 흔적이 자주 보입니다. 보관해 둔 옥수수 알을 화분에서 싹 틔워 밭에 옮겨 심기도 하고, 정원과 과수 관리에도 관여합니다. 이런 기록들을 읽다 보면 집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꾸고 수확하며 즐기는 생활공간으로 만드는 성향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문창호 선생님과도 흥미로운 대비를 이룹니다. 선생님이 공간을 계획하고 건축적으로 생각한다면, 신상진 여사는 그 공간에 생활을 채워 넣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6. 강한 사람인데, 그것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
오랜 해외생활, 세 아들의 성장과 독립, 남편의 교수·연구·건축 활동, 여러 차례의 이사와 여행, 가족과 친척 관계까지 함께 지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생활력과 인내를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블로그 안에서 신상진 여사는 자신을 앞세우는 인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받은 인상은 “조용해서 약한 사람이 아니라, 강하지만 굳이 그것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ChatGPT가 보는 신상진 — 여섯 가지 모습
- 가족의 중심
가족 구성원과 친척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가족생활의 안정성을 지키는 사람 - 현실적인 생활가
집·정원·생활환경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해결하려는 사람 - 따뜻한 동반자
남편의 연구·여행·사회활동을 오랜 기간 함께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 -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
필요할 때는 의견을 분명히 내고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 - 생활을 가꾸는 사람
집과 정원, 가족의 식사와 모임 같은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게 만드는 사람 - 조용한 강인함을 가진 사람
오랜 세월 많은 변화와 책임을 감당하면서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사람
제가 한 문장으로 다시 정리한다면 어제보다 조금 달라집니다.
“신상진은 가족의 뒤에서 조용히 따라온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생활력을 가지고 가족의 중심을 지키며 문창호와 긴 삶을 함께 만들어 온 든든하고 현실적인 동반자이다.”
그리고 두 분을 함께 놓고 보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문창호가 새로운 길을 찾아 밖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신상진은 그 길이 흔들리지 않도록 생활의 기반을 단단히 만들고, 때로는 방향까지 함께 결정해 온 사람이다.”

장남
선생님 블로그에서 문재상 교수의 성장 과정, 유학, 학위 취득, 취업 과정, 교수 임용, 결혼, 최근 가족 활동까지 몇 가지 기록을 찾아보았습니다. 기록이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있어서, 지난번 신상진 여사님을 볼 때보다 문재상 교수에 대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인상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보는 문재상 교수는 한마디로 “조용히 자기 길을 오래 걸어서 결국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낸 사람”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성실성과 학문적 끈기입니다.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토목구조공학 석사를 마친 뒤, 미국 UT Austin에서 토목공학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특히 미국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2010년, 언어와 생활환경에 적응하면서도 구조공학 박사과정 자격시험을 첫 시도에 통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선생님께서도 미국생활 적응과 전공수업을 병행하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적으셨습니다.
제가 보는 문재상의 다섯 가지 모습
1.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기보다 끝까지 공부하는 사람
학부–석사–미국 박사로 이어지는 과정만 보면 흔히 ‘공부를 잘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블로그의 여러 기록을 이어서 보면 저는 재능보다 지속성이 더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박사학위 전공도 동역학과 에어로다이나믹스처럼 상당한 수학적·공학적 집중력을 요구하는 분야입니다.
2. 곧장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돌아갈 줄 아는 사람’
이 부분이 문재상 교수의 인상을 가장 좋게 만듭니다. 미국 박사학위를 마쳤다고 곧바로 대학 교수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귀국 후 군산대 풍력센터 연구교수로 일했고, 이후 토목엔지니어링 회사인 유신에서 약 5년간 실무경험을 쌓았습니다. 대학 교수직에도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다가 2023년 금오공대 토목공학과 구조공학 분야 교수로 임용됐습니다. 선생님께서 당시 이를 “먼길을 돌아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표현하신 것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히려 재상 교수에게 큰 자산이라고 봅니다. 대학에서만 공부한 교수가 아니라 연구–기업 실무–대학을 모두 경험한 공학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3.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결과로 보여주는 사람
블로그에서 아드님을 기록한 선생님의 문체도 흥미롭습니다. 다른 가족 이야기에 비해 재상 교수에 관한 글에는 극적인 감정 표현이 많지 않습니다. 대신 석사 졸업 → 박사과정 자격시험 통과 → 박사 → 연구교수 → 엔지니어링 회사 → 교수 임용처럼 결과가 차곡차곡 등장합니다.
그래서 제가 받는 인상은 말보다는 축적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4. 가족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끈을 놓지 않는 장남
미국 유학 중에도 일시 귀국해 가족 모임에 함께했고, 최근에는 선생님과 세 아들이 함께하는 ‘4부자 골프’에도 참여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큰아들이 좀 곤란할 듯하더니 날이 다되어 가능하다고 한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각자 바쁜 생활 속에서도 가족행사에는 가능한 한 함께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전형적인 의미에서 부모 곁을 늘 지키는 장남이라기보다는, 자기 생활을 독립적으로 꾸리면서 필요할 때 가족 안으로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현대적인 장남에 가까워 보입니다.
5. 이제는 ‘아들’에서 ‘한 가정의 책임자’로 넘어간 사람
2025년 결혼하여 지윤 씨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결혼식 축사에서 선생님은 재상 교수를 “어린 시절부터 성실하고 밝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장점을 과장해서 말할 수도 있는 자리지만, 오랜 블로그 기록과 비교해 보아도 ‘성실하다’는 표현은 상당히 일관됩니다.
또 저는 선생님께서 며느리에게 장남 며느리라는 이유로 특별한 의무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부부가 약속했다는 대목도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재상 부부에게 부모 세대의 삶을 그대로 이어가도록 요구하기보다 두 사람이 독립적인 가정을 만들도록 놓아주려는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문창호와 아들 문재상의 차이
제가 보기에는 부자가 닮았으면서도 상당히 다릅니다.
선생님은 새로운 일을 먼저 생각하고 밖으로 제안하는 사람입니다. 병원건축, 플로팅 건축,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 움직이고, 생각이 생기면 글을 쓰고 사람에게 제안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반면 재상 교수는 지금까지의 궤적만 놓고 보면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는 사람에 좀 더 가깝습니다. 아버지가 ‘확장형’이라면 아들은 ‘축적형’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전문분야도 절묘하게 연결됩니다. 아버지는 건축계획과 플로팅 건축을 연구했고, 아들은 구조공학·동역학·에어로다이나믹스를 공부했습니다. 서로 접근법은 다르지만 결국 ‘건축과 구조물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제대로 서고 움직이는가’라는 큰 영역에서 만납니다.
그래서 제가 문재상 교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문재상은 앞서 나가기 위해 서두르기보다 자신의 분야를 묵묵히 파고들어, 몇 번의 굴곡에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낸 성실한 공학자이자, 이제는 자기 가정을 만들어 가는 든든한 장남이다.”
그리고 조금 더 부자 관계를 담아 표현하면,
“문창호가 새로운 길을 찾아 먼저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라면, 문재상은 선택한 길을 깊고 오래 걸어 끝내 자신의 길로 만드는 사람이다.”

차남
선생님 블로그에서 문재영 선생님의 성장 과정과 의대생활, 전공의 수련, 군의관 복무, 그리고 최근의 가족 기록까지 찾아보았습니다.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다른 동명이인 자료는 섞일 가능성이 있어, 여기서는 선생님 블로그에서 확실히 문재영 선생님으로 확인되는 기록을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제가 보는 문재영 선생님은 한마디로 “실력과 책임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아주 일찍부터 자신의 길을 비교적 분명하게 잡았다는 점입니다. 군산에서 초·중·고를 마친 뒤 조선대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6년간의 과정을 마쳐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후 전북대병원에서 인턴을 거쳐 일반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당시 세 아들의 교육에서 사교육이나 특목고보다 학교교육과 인성, 자기주도성을 중시했다고 기록하셨는데, 그런 환경 속에서 재영 선생님도 자신의 전문직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간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게 보는 것은 힘든 일을 피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외과는 의료 분야에서도 체력과 집중력, 판단력, 책임감이 많이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2015년에는 전북대병원 일반외과 레지던트 4년차였고, 전문의 수련을 마친 뒤에는 의무장교로 입대했습니다. 두 달가량의 훈련을 거쳐 대위로 임관해 강원도 전방 공군기지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했습니다. 부모님이 면회 갔을 때는 민통선을 지나 해발 약 1,170m의 레이더기지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특징을 꼽는다면 강한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대 공부, 외과 수련, 전문의 시험, 군의관 복무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과정이 아닙니다. 특히 외과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때로는 매우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오랜 수련과 군 복무를 차례로 완수한 과정 자체가 재영 선생님의 책임감과 버티는 힘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는 실용적이고 행동이 빠른 사람이라는 인상입니다. 이 점은 2024년 선생님의 맹장염 수술 기록에서 아주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새벽에 선생님께서 복통으로 연락하자 마침 당직 중이던 재영 선생님이 병원으로 오라고 했고, 검사 결과를 계속 확인한 뒤 충수가 상당히 부어 있는 것을 보고 즉시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직접 수술을 집도해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아들이 의사라서 편리했다’는 이야기를 넘어선다고 봅니다. 아버지가 환자가 되는 순간에도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의사로서 판단하고 필요한 일을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아버지 입장에서는 평생 키워온 아들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특별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가족에 대한 정이 깊지만 표현은 실질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선생님의 회갑 때도 당시 레지던트 4년차로 바쁜 상황에서 “회갑잔치는 못해도 식사라도 하자”고 먼저 연락해 가족 식사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거창한 말보다는 시간을 내고, 필요한 일을 하고, 가족이 필요할 때 곁에 있는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네 번째는 현장형 전문인입니다. 장남 문재상 교수가 연구와 구조공학을 통해 문제를 깊이 분석하는 쪽이라면, 재영 선생님은 사람의 몸을 직접 다루고 현장에서 결정을 내려 결과까지 책임지는 직업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형이 조금 더 ‘분석하고 축적하는 사람’이라면, 둘째는 ‘판단하고 실행하는 사람’에 가까워 보입니다.
다섯 번째는 부모로부터 독립했지만 가족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의대와 병원 수련, 군복무로 오랫동안 바쁜 생활을 했지만 블로그에는 부모님과 식사하고, 군복무 중 면회를 받고, 아버지가 아플 때 직접 치료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부모 곁에 늘 머물러 있는 효도의 형태보다는 자기 일을 충실히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가족에게 힘이 되는 형태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 아들을 비교할 때 문재영 선생님의 개성이 꽤 뚜렷하다고 봅니다.
문재상은 ‘꾸준히 축적하여 자기 자리를 만드는 사람’, 문재영은 ‘상황을 판단하고 직접 해결하는 사람’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세상에 제안하는 쪽이 강합니다. 부자가 모두 전문직이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서로 다른 셈입니다.
제가 문재영 선생님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문재영은 자신의 책임을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며, 어려운 순간에는 판단하고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든든한 의사이자 아들이다.”
조금 더 가족관계를 담으면 다음 표현도 잘 어울립니다.
“평소에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지만, 가족에게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가장 먼저 전문성과 행동으로 답하는 사람.”
특히 아버지의 맹장수술을 아들이 직접 집도한 장면은 두 분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 같습니다. 어린 아들을 돌보던 아버지가 세월이 지나 환자가 되어 아들에게 몸을 맡겼다는 점에서, 자서전에도 충분히 남길 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막내
선생님 블로그에서 문재우 선생님의 어린 시절 미국 학교생활, 군산제일고 시절, 입시 과정, 고려대 의대 진학과 졸업, 농구 활동, 그리고 최근 선생님과 함께한 여행과 골프 기록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시기의 기록을 이어서 보니, 세 아들 가운데 막내 문재우 선생님은 또 다른 개성이 아주 뚜렷합니다.
제가 보는 문재우 선생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한번 흔들려도 다시 일어나 결국 자기 길을 만들어 내는, 밝고 균형 잡힌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눈에 띄는 것은 적응력과 기본적인 학습 능력입니다. 미국 Clemson 체류 당시 Edwards Middle School 7학년에 다니면서 한 학기에 전 과목 A를 받았습니다. 낯선 언어와 학교환경에 들어가 비교적 빠르게 적응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문재우 선생님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성적 자체보다 농구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중학교 농구부 선발에서 60여 명 가운데 15명에 들었는데, 코치는 공격적으로 혼자 득점하기보다 골밑 몸싸움과 리바운드, 패스 등 팀 플레이를 잘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훗날 고려대 의대에서도 농구동아리 활동을 계속했고, 2022년 서울지역 8개 의과대학 농구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오랫동안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해 결국 좋은 결과까지 만들었다는 점이 재우 선생님의 성향을 잘 보여줍니다.
제가 보는 문재우의 다섯 가지 모습
1. 회복력이 강한 사람
재우 선생님의 성장 과정에는 아주 중요한 굴곡이 하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성적도 좋았고, 2015년 6월 모의평가에서는 화학 한 문제를 제외하고 다른 과목에서 만점을 받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그러나 첫 대학입시에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고 재수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당시 블로그에 “와신상담”이라고 표현하신 것이 인상적입니다. 결국 재도전하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낙제 없이 6년 과정을 마친 뒤 의사국가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우 선생님의 가장 중요한 장점이 처음부터 실패하지 않는 능력보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서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 공부와 운동을 함께하는 균형감
세 아들의 기록 가운데 재우 선생님에게는 유난히 운동 이야기가 많습니다. 중학생 때 미국 학교 농구부 주전으로 뛰었고, 대학에서도 농구동아리를 계속했으며, 최근에는 선생님과 골프를 즐깁니다.
의과대학 공부만으로도 상당히 힘든데 농구를 장기간 이어갔다는 것은 단순한 취미 이상이라고 봅니다. 집중해서 공부할 때와 몸을 움직이며 사람들과 어울릴 때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 즉 삶의 균형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3. 경쟁적이지만 개인주의적이지 않은 사람
미국 농구부 시절의 코치 평가가 이 점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다른 아이들이 득점에 집중할 때 재우 선생님은 리바운드를 잡고 동료에게 패스하며 팀 전체를 살리는 플레이를 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성격의 중요한 단서로 봅니다.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하지만 혼자 돋보이는 것보다 팀이 잘되는 방식을 찾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의사라는 직업도 결국 간호사, 동료 의사, 다른 전문과와 협업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성향은 상당한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4. 의외로 끈기가 강한 사람
막내라는 위치 때문에 가족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밝은 이미지가 강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기록을 보면 매우 꾸준합니다. 고등학교에서는 3년 개근상을 비롯해 학력우수상 등을 받았고, 재수를 거쳐 의대에 들어간 뒤에는 6년 과정을 낙제 없이 마쳤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편안해 보여도 안쪽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끝까지 해내는 힘이 상당히 강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5. 아버지와 ‘친구 같은 관계’가 가장 강한 아들
최근 블로그 기록에서 이 부분이 특히 눈에 띕니다. 2025년에는 선생님과 단둘이 일본 오카야마로 골프여행을 갔고, 이후 군산에서도 함께 2인 골프를 여러 날 즐겼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무주에서 아버지와 둘이 스키를 탔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보충수업이 있었지만 하루쯤 쉬면서 즐기라고 데리고 가셨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2014년의 아버지와 아들의 스키, 2025년의 아버지와 아들의 골프여행을 이어서 보면 상당히 아름다운 흐름이 보입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놀러 다니던 아버지가 이제는 성인이 된 막내아들과 여행하고 운동하는 친구가 된 것입니다.
세 아들을 비교해 보면
세 아들의 성격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문재상은 오랜 시간 한 분야를 파고들어 자기 자리를 만드는 ‘축적형’,
문재영은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행동으로 해결하는 ‘실행형’,
문재우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실패를 딛고 다시 성장하는 ‘회복·균형형’에 가장 가깝습니다.
그리고 막내 재우 선생님에게는 형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보이는 유연함과 사교성, 운동을 통한 활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차이가 보입니다. 재상 선생님과는 전문성과 학문의 길에서 공감대가 있고, 재영 선생님과는 의사와 환자라는 특별한 경험까지 있었지만, 재우 선생님과는 스키, 골프, 여행처럼 함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유난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문재우 선생님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문재우는 한 번의 좌절에도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자기 길을 만들어 냈으며, 공부와 운동, 경쟁과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밝고 끈기 있는 의사이다.”
가족관계를 조금 더 담으면 이런 표현도 잘 어울립니다.
“문재우는 세 아들 가운데 막내다운 밝음과 유연함을 지니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끝까지 버티는 힘을 가진 사람이며, 이제는 아버지와 여행과 운동을 함께 즐기는 좋은 친구가 된 아들이다.”
앞의 문재상·문재영 그래픽과 같은 시리즈로 만든다면 제목은 「ChatGPT가 보는 문재우 — 다시 일어나 자기 길을 만든 사람」 또는 조금 더 밝게 **「ChatGPT가 보는 문재우 — 균형과 끈기로 성장한 사람」**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